'내란수괴‘ 윤석열로 인해 다시 거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 중 하나입니다. 이 곡은 단순한 민중가요라는 장르적 분류를 넘어,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시민들의 희생을 기리고 그 정신을 계승하는 대한민국 민주화의 상징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민주화와 인권운동의 대표적인 주제곡으로 사용되며 국가와 세대, 인종과 언어를 넘어 선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노래에 대해 좀 자세히 정리해 보았습니다.
목차
임을 위한 행진곡의 탄생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탄생했습니다.
1980년 5월, 광주는 군부 정권의 무력 진압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들의 의지가 뜨겁게 타올랐던 현장이었습니다. 당시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되었고, 이러한 희생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해 1982년 윤상원 열사와 박기순 열사의 영혼결혼식이 개최되었습니다. 이 영혼결혼식은 임을 위한 행진곡의 탄생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단순한 추모를 넘어 민주화 운동의 새로운 상징을 만들었습니다.
윤상원 열사는 광주에서 태어나 대학 졸업 후 사회 부조리를 목격하며 노동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위장 취업을 선택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들불야학의 사회교사로 활동하며 노동자들과 연대하였고,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는 계엄군의 진압에 맞서 민주투쟁위원회의 대변인으로 활동했습니다. 특히, 그의 연설과 일기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1980년 5월 항쟁의 마지막 날까지 전남도청을 사수하다가 계엄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윤상원 열사를 들불야학으로 인도한 사람이 바로 박기순 열사입니다.
박기순 열사는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교육학을 전공하며 노동자 야학인 들불야학의 창립에 앞장섰습니다. 그녀는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배움의 장을 만들어 그들의 권리와 목소리를 키우는 데 헌신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연탄가스 사고로 인해 1978년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그녀의 헌신은 윤상원 열사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고, 두 사람은 이후 영혼결혼식을 통해 하나로 기억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들불야학 이전부터 친분이 있는 사이였으나 야학을 함께 이끌어나가며 더욱 연대감 깊은 동지가 된 것입니다.
이 두 열사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서사가 아니라, 민주화를 향한 한국인의 의지와 연대를 보여주는 강력한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곡의 제작 과정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작 과정은 그 자체로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백기완 선생의 장편시 ‘묏비나리’는 이 곡의 기반이 되었으며, 이는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헌신했던 백 선생의 투쟁 정신이 담긴 작품입니다. 이 시의 한 구절이 소설가 황석영의 제안으로 작곡가 김종률의 손을 거쳐 곡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당시 이 노래는 ‘넋풀이 – 빛의 결혼식’이라는 노래극의 마지막 합창곡으로 처음 선보였으며, 단 1년 만에 전국의 대학가와 집회 현장에 퍼져 나가며 민주화의 목소리가 되었습니다.
노래 제작 과정에서는 단순히 예술적 협업을 넘어선 특별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백기완 선생은 옥중에서 ‘묏비나리’를 쓰며 억압받는 민중의 목소리를 시로 표현했는데, 황석영은 이 시를 기반으로 노래로 완성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작곡가 김종률은 당시 전남대생으로, 노래를 작곡하며 광주의 참상을 알리는 데 기여하고자 했습니다.
노래 제작 당시, 광주의 상황은 여전히 암울했으며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행위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주의 탄압 속에서 이들은 노래가 외부로 알려질 경우 자신들에게 위험이 닥칠 것을 알면서도 민주화 운동의 메시지를 담아냈습니다.
황석영을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과 활동가들은 노래를 통해 억압을 넘어선 연대를 만들었고, 이는 곧 전국적인 민주화 운동의 힘이 되었습니다.
국가적 ・ 국제적 확산
임을 위한 행진곡은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980년대에는 대학가와 집회 현장에서 주요 곡으로 불렸으며, 이후 5.18 기념식에서도 빠지지 않고 제창되었습니다. 이 노래는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의 사회운동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도 이 곡은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특히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에서는 이 곡이 시위대에 의해 불리며 아시아 각국의 민주화 운동에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대만, 태국, 인도, 캄보디아 등 다양한 나라에서도 이 곡이 번역되어 불리며, 각국의 민주화와 노동운동, 인권운동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억압과 불의에 맞서 싸우는 전 세계 시민들의 연대를 상징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는 억압받는 민중의 희생과 연대를 노래하며 민주화 운동의 핵심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원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홍콩에서는 2019년 민주화 시위에서 이 곡이 번역되어 불렸습니다. 홍콩 가사는 원작의 정신을 살려 다음과 같이 변형되었습니다.
熱血不息共鳴高歌 / 投身於歷史裡偉大承諾 / 戰友雖已離去旗幟高高揚 / 新天將至繼續不屈抗爭
뜨겁게 끓는 피로 함께 노래하며 / 위대한 약속 속에 몸을 던져 / 전우는 떠났어도 깃발은 높이 날리고 / 새날이 올 때까지 굴하지 않고 싸운다
캄보디아에서도 이 곡이 인권운동과 민주화 투쟁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으며, 다음과 같은 가사가 만들어졌습니다.
ជីវិតគ្មានសេចក្ដីស្រឡាញ់ឬកិត្តិយស / យើងស្បថថាប្រឆាំងអំពើអយុត្តិធម៌ / មិត្តរួមសកម្មភាពបាត់បង់តែមែនជំនឿ / រហូតដល់ថ្ងៃថ្មីនឹងមកដល់
사랑도 명예도 없는 삶 속에서 / 우리는 불의에 맞서 싸우겠다고 맹세하였네 / 전우들은 사라졌지만 우리의 신념은 남아 / 새로운 날이 올 때까지 싸워가리라
각국에서 가사가 변형되었지만, 그 본질은 동일합니다. 이 곡은 전 세계 민주화 운동의 연대를 상징하며 각국의 현실과 문화적 맥락에 맞게 다듬어져 왔습니다. 특히, 이 가사들은 새로운 세대와 국가에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한 영감과 의지를 불러일으키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어이없는 논란과 사회적 갈등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 상징성 때문에 여러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시절, 5.18 기념식에서 이 곡을 제창할지 여부를 두고 큰 갈등이 발생했습니다. 일부 보수 세력은 이 곡이 북한과 연관이 있다는 음모론을 제기하며, 광주민주화운동의 가치를 훼손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반해 광주와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들은 이 곡이 기념식에서 반드시 불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이러한 논란은 단순히 노래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와 정의를 둘러싼 갈등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논란에도 불구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은 끊임없이 불리며 민주주의와 인권의 상징으로서 그 가치를 지켜왔습니다.
촛불혁명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5.18 기념식에서 이 곡을 공식적으로 제창하도록 지시하며, 논란을 마무리 짓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윤석열도 지난 2024년 5월 18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참가자들과 손을 잡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습니다.
윤석열과 국민의힘 의원들이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목이 터져라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장면입니다.
저들의 민낯을 생각하며 감상해보시지요.
민주화와 평화의 메시지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단순한 노래를 넘어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역사와 정신을 담아낸 상징적인 작품입니다. 그 가사와 멜로디는 불의에 저항하고 정의를 추구한 이들의 숭고한 희생을 생생하게 기억하게 합니다. 또한 이 곡은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억압과 불의에 맞서는 연대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왔습니다.
우리가 이 곡을 다시 부를 때, 단순히 과거를 기리는 것을 넘어 현재와 미래를 향한 우리의 책임을 되새길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한 길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이제 이 곡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깊이 이해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해보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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