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들 / / 2023. 12. 7. 02:47

소크라테스의 사손(師孫), 플라톤의 수제자, 아리스토텔레스 리케이온을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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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플라톤과 더불어 가장 유명한 그리스 철학자로 꼽히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정리해보겠습니다.

 

라파엘 作 - 아테네 학당
라파엘 作 - 아테네 학당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BC 384년 그리스의 '스타게이로스'에서 태어나고 BC 322년, 그러니까 62년이라는 생각보다 길지않은 삶을 살다간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의 학맥을 잇는 가장 유명한 철학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위의 그림은 1511년 로마에서 이탈리아 화가 라파엘이 완성한 거대한 프레스코화 '아테네 학당'이라는 작품입니다.

작품의 한 가운데에는 비범한 두 명의 인물이 서 있습니다.

바로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과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바티칸에 설치된 이 그림으로 서양의 지적 전통에서 스승과 더불어 아리스토텔레스가 차지하는 무게와 위치가 어떠한 지 미루어 짐작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태어난 '스타게이로스'라는 마을은 그리스 북부인 마케도니아에 위치한 지역입니다.

아버지는 당시 마케도니아의 왕 아민타스 3 세를 비롯한 왕족의 가정의였던 니코마코스였습니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과 같이 고대 그리스 인물들의 성씨에 대해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은데, 당시에는 성씨가 따로 없던 시기라서 그냥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름의 전부였습니다.

 

궁중에서 일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원래는 의학 수련을 받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기원전 367년, 17살이 되던 해에 플라톤이 아테네에 세운 학원 '아카데미아'로 들어가게됩니다. 그리고 플라톤이 죽을 때까지 20여년간을 그곳에서 지냈습니다.

플라톤은 오랜 시간 함께 공부한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리켜 '아카데미의 정신'이라고 부르며 높이 평가했습니다.

 

아카데미아에 있는 동안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첫 번째 저서를 완성하게 됩니다.

비록 그가 플라톤의 영향을 많이 받기는 했지만 두 사람은 몇몇 철학적 질문에 관해서는 의견이 달랐고, 멘토가 죽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결국 아테네를 떠나게 됩니다.

 

 

리케이온・Lykeion을 세우다

 

마케도니아로 돌아간 아리스토텔레스는 왕의 열세 살짜리 어린 아들인 '알렉산더'의 가정교사가 됩니다. 그리고 알렉산더가 왕위를 이은 후 아테네를 정복하자 다시 아테네로 돌아가 자신의 학교를 세웁니다.

이 학교가 바로 리케이온 (Lykeion)입니다.

고대 아테네의 지도
고대 아테네의 지도

 

위의 그림은 고대 아테네의 지도입니다.

리케이온은 아테네 남동쪽 외곽의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엄 근처에 위치해있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최초로 공식적인 논리체계를 만들어냄으로써 서양 철학의 기초를 쌓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생물학을 개척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형이상학에 관한 그의 글은 중세시대에 유럽에서 재발견되면서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기독교 신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아테네는 마케도니아의 통치에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아테네의 사제 에우뤼메돈은 마케도니아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아테네에서 자리잡고 이름을 떨치고 있는 것이 꼴보기 싫었고, 마침내 그를 불경죄로 고발하게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예전에 지었던 헤르미아스의 죽음을 기리는 찬가가, 아폴론 신을 찬양할 때 사용하는 양식의 찬가라는 이유로, 그것은 신에 대한 불경이라는 핑계였습니다. 

이것은 말그대로 터무니없는 억지였고, 시기적으로도 한참이나 예전일을 다시 꺼낸 것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리케이온을 제자 테오프라스토스에게 물려주고 에비아섬으로 이주하게됩니다.

그러나 이주 후 1년 정도 뒤 그곳에서 얻은 위장병으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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