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들 / / 2023. 12. 7. 03:05

플라톤, 넓은 어깨의 레슬링 선수,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철학자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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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제자로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철학자 중의 한 명인 플라톤에 대해서는 참 많은 기록이 남아있고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플라톤에 관해 전해지는 몇가지 이야기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

 

플라톤 plato
 

 

플라톤 ・ Plato ・ BC429 ~ 347

 

플라톤은 고대 아테네의 부유하고 막강한 정치적 세력을 가진 가문의 자손으로 태어났으며 원래 이름은 '아리스토클레스 Aristocles' 입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이름인 '플라톤'은 젊은 시절 그의 레슬링 코치가 그의 넓은 어깨에 감탄하여 붙여준 별명입니다.

'넓은'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플라토스 Platos'에서 파생된 이 별명은 그를 유명하게 만든 철학에도 똑같이 잘 적용됩니다.

정치 이론에 관한 글이 가장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시와 수학, 철학, 법률 등 다방면에 걸쳐 무수히 많은 저작을 남겼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이며 아테네 북서쪽에 있는 영웅신 아카데모스의 신역에 설립한 '아카데미아'의 창설자로 유명하며,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고전기 헬라스 철학을 대표하는 학자입니다.

그의 연구분야는 형이상학, 정치학, 윤리학, 인식론 등 서양 철학의 모든 영역에 걸쳐있으며, 현대 철학자 화이트헤드(1861~1947)는 실상 플라톤 이후의 유럽 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일련의 각주들'이라는 평가를 했을 정도로 중요한 인물입니다. 또한 플라톤은 그가 주장한 철학적 주장과 함께 금욕적이고 경건한 삶의 태도를 솔선수범하므로써 그리스도교와 함께 이후 유럽인들의 인생관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 꼽히기도 합니다.

 

 

 

아케데미아  Academia

아카데미아가 있던 아테네 지도
아테네 지도

 

타고난 금수저로 젊은 시절 특권을 누리며 자란 플라톤은 철학자 소크라테스 문하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이루어진 스승의 재판과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죽고 난 후 소크라테스의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잠시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로 피신을 했다가 40대에 접어들 무렵 다시 아테네로 돌아와 아케데미아를 설립하였습니다.

 

아케데미아는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위한 철학적 연구실을 목표로 만들어졌으며 서양 최초의 교육 기관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아카데미아에 기원전 367년경 플라톤에게 배우기 위해 아테네에 도착한 아리스토텔레스를 포함하여 그리스 전역에서 학생들이 모여들 정도로 이름높은 교육기관으로 성장하였습니다. 

 

 

 

플라톤의 글

 

플라톤의 저작물로 인정받는 저서는 모두 26~27편으로 추정됩니다.

이 책들은 집필 시기에 따라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눠 구분하는데 초기는 플라톤이 40세 이전에 쓴 책들을 말합니다.

중기는 아카데미아를 세울 무렵부터 60세에 이를 때까지 저술한 것들로 추정되는 것들이며, 그 이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쓴 책들이 말기에 속합니다.

이를 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집필 시기 기간 저작명
초기 ~ 40세 이전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에우티프론, 카르미데스, 라케스, 소히피아스, 이온, 프로타고라스, 리시스, 대 히피아스, 에우티데모스, 메넥세노스, 고르기아스, 국가 1권
중기 아카데미아 설립 ~ 60세 메논, 크라틸로스, 향연, 파이돈, 국가 2권~10권, 파이드로스, 파르메니데스, 테아이테토스
후기 ~ 80세 (BC347년) 티마이오스, 크리티아스, 소피스트, 정치가, 필레보스, 법률

 

현재 남아있는 플라톤의 글은 대부분 대화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이는 플라톤이 철학적 개념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사용한 방식으로, 예컨데 가장 유명한 '국가'의 경우 소크라테스와 다른 그리스인들 사이에 벌어진 가상의 긴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국가'에는 플라톤의 이론 중 가장 유명한 '동굴의 우화 Allegory of the Cave'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평생 동굴 안에서 사슬에 묶인 채 햇빛 한번 본 적 없는 집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볼 수 있는 이미지라고는 불빛에 비쳐 동굴 벽에 투영되는 몇가지 물체의 그림자가 전부입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동굴 속의 사람들은 결국 벽에 투영된 이미지를 실물이라고 믿게 되지만, 그들 중 한 사람이 탈출해서 동굴 밖으로 나온다면 더 넓은 세상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플라톤은 이 이야기를 교육과, 동굴에서 빠져나와 현실의 본질이라는 형이상학까지 이해할 수 있는 철학자의 역할에 대한 우화로 사용하였습니다.

 


 

플라톤의 죽음에 대해서는 몇가지 이야기 전해오는데 그 시기는 공통적으로 기원전 347년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80세의 나이였다는 것으로 일치합니다.

어떤 문서에서는 어린 트라키아 소녀가 그에게 플루트를 연주하는 동안 그의 침대에서 죽었다는 말도 있고, 또다른 문서인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가 언급한 3세기 알렉산드리아인 헤르미푸스의 기록에서는 플라톤이 결혼 피로연 중 사망했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AD2세기의 기독교 작가인 테르툴리안에 따르면 플라톤은 잠결에 죽었다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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